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가리아 공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878년 제12차 [[러시아-튀르크 전쟁]]이 [[러시아 제국]]과 기타 슬라브족 독립군의 대승리로 끝난 이후 열린 [[산 스테파노 조약]]에서 러시아가 [[오스만 제국]]을 약화시키기 위해 오스만이 지배하던 불가리아 독립을 요구했고 오스만도 어쩔 수 없이 불가리아의 자치를 인정하면서 불가리아 공국이 성립하였다. 불가리아는 500년에 걸친 [[오스만 제국]]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인 산 스테파노 조약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고, 산 스테파노 조약이 수립된 3월 3일을 [[독립기념일]]로 지정하며 지금도 기념하고 있다. 하지만 이후 [[영국]]과 [[프랑스 제3공화국]],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이 [[러시아 제국]]의 남하를 우려하면서, [[독일 제국]]의 재상인 [[오토 폰 비스마르크]]의 중재에 따라 [[베를린 회의]]가 개최되었다. 베를린 회의의 결과에 따라 불가리아 공국은 다시 [[오스만 제국]]의 종속국으로 돌아갔지만, 사실상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다. 이후 [[알렉산더르 1세]]는 러시아라는 후광을 받고 불가리아 공국의 초대 공으로 즉위하였고, 팽창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1885년에는 [[세르비아 왕국]]과 발칸반도 남부의 주도권을 놓고 [[세르비아-불가리아 전쟁]]을 벌이기도 하였다. 1886년 친러파의 쿠데타로 알렉산더르 1세가 러시아로 임시 망명하였다. 쿠데타는 진압되었으나 러시아 측에서 알렉산더르 1세의 귀국을 인정하지 않아서 결국 알렉산더르 1세는 불가리아 공국의 공위에서 물러났다. 이후 불가리아에서는 [[페르디난트 1세(불가리아)|페르디난트 1세]]가 즉위하여 190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고 [[불가리아 왕국]]의 초대 차르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